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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1TV, 1월28일) 신숙주는 변절자인가?


(반려동물뉴스(CABN)) 457년, 세조는 상왕으로 있던 단종을 유배 보낸다. 그리고 얼마 후, 단종의 숙부이자 세조의 동생인 금성대군이 유배 간 단종의 복위를 꾀한다는 소식이 조정에 퍼지기 시작한다. 이에 신숙주를 필두로 한 신하들은 세조에게 금성대군과 단종을 사사토록 명을 내려달라며 간청한다. 금성대군과 단종을 죽여야한다고 주장한 신숙주는 어떤 사람인가?



세종의 남자, 신숙주

신숙주는 천자(天資)가 고매(高?)하고 관후(寬厚)하면서 활달(豁達)하였으며,

경사(經史)에 두루 미치고 의논(議論)에 항상 대체(大體)를 지녀서

까다롭거나 자질구레하지 아니하였으며,

대의(大儀)를 결단함에 있어 강하(江河)를 터놓은 것과 같이 막힘이 없어서

조야(朝野)가 의지하고 중히 여겼다.

-신숙주 졸기



1438년, 신숙주는 21세의 나이로 진사, 생원시에 모두 합격하고 다음해 문과에 3등으로 급제한다. 당시 문과 최종 급제자 나이는 평균적으로 30대 중반. 이른 나이에 급제한 신숙주는 집현전 학사가 되어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한다. 세종은 수재였던 신숙주를 신뢰하며, 문종에게 ‘신숙주는 국사를 부탁할 만한 자이다’라 평가하기도 했다. 세종이 어의까지 덮어주며 아꼈다는 신숙주, 그는 집현전 동료였던 성삼문과 달리 세종의 원손인 단종을 등지고 세조 편에 선다. 그는 과연 변절자인가?



신숙주, 세조와 만나다

1452년 단종 즉위년, 수양대군이 집 앞을 지나가는 신숙주를 집으로 불러들인다.

“어찌 어찌 과문불입(過門不入) 하는가”

술잔을 기울이며 농담으로 말하기를,

“옛 친구를 어찌 찾아와 보지 않는가? 이야기하고 싶은 지 오래였다.

사람이 비록 죽지 않을지라도 사직에는 죽을 일이다.”

하니, 신숙주가 대답하기를,

“장부가 편안히 아녀자의 수중에서 죽는다면

그것은 재가부지(在家不知)라고 할 만하겠습니다.”

하므로, 세조가 즉시 말하기를,

“그렇다면 중국으로 가라.” 하였다.

<단종실록 2권>



단종 재위 시절 수양대군은 자신의 집 앞으로 지나가던 신숙주를 부른다. 당시 조선은 하급관리가 상급관리나, 국왕과 가까운 종친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 상황. 신숙주가 수양대군의 집 앞을 지나간 건 우연이었을까? 신숙주를 불러들인 수양대군은 신숙주에게 단종의 고명에 보답하는 사은사의 일행이 되어 자신과 함께 명나라에 가자고 한다. 이후 세조의 사람이 된 신숙주, 그가 단종이 아닌 수양대군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신숙주, 세조와 함께 세종의 정신을 계승하다.

당태종에게 위징이 있었다면, 세조에게는 신숙주가 있었다. 신숙주는 세조와 함께 세종의 정책을 이어나가는 데 앞장선다. 세종 때 만들어졌지만 대대적으로 시행되지 못한 공법을 적극적으로 확대시키는 한편 평안도와 함경도 국경에서 대립하고 있던 여진세력을 몰아내는 것에 앞장서며 세종의 북방정책을 계승해나간다. 더불어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하며 세조 때 국정 전반을 이끈다. 세종의 재림을 꿈꾼 세조의 조력자 신숙주, 그는 과연 충신인가, 변절자인가?



1월 28일 일요일 밤 9시 40분, 다시 돌아온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신숙주는 변절자인가’편에서 신숙주를 다시 생각해본다.




기사 및 사진제공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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